

32세
186cm
남성
74kg



상류 계급
체스터(Chester) 백작

“ 내가 권하는 잔을 마다할 텐가, 감히? ”
클로프 R. 아치볼드 Clope Regina Archibald



제발 스스로에게서 주의를 돌려봐. 모친이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을 때, 클로프는 혹시 진정제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렇게 모자간 사이에 금이 갔다. 클로프 아치볼드는 주색과 향락에 빠져 살았지만 후계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는 배운 사람이었고 천박하게 굴 때가 있었지만 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으며 뼛속까지 귀족주의가 녹아든 인간이었지만 일단은 숨길 줄 알았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을 알았다. 다른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망나니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몰랐다. 사교 파티에 이미 진창 취한 상태로 나타나 홀에서 엉망으로 비틀거렸던 날부터? 아닐 것이다. 그의 비행은 태어난 즉시 몸에 달고 나온 기질과도 같아서, 일삼지 않으면 좀이 쑤신다고 했다. 다행히 서른을 기점으로 다혈질은 줄고 퍽 매력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법을 터득해냈다. 필요하다면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일에도 유능했다. 그와 어울리는 무리들은 체스터 백작이 과하게 굴 때도 있지만 알고 보면 참으로 섬세한 사람이라며 입을 모았다. 클로프는 이 '알고 보면'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모든 악행의 면죄부가 되는 언어 같았다.

[체스터]
영국 중부의 체스터령을 소유한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다. 현 가주는 체스터 후작으로, 가족 일원은 후작 부인과 백작인 장남, 성공회 사제인 차남이 있다. 체스터의 갈대밭은 운치 있는 풍경임에는 틀림없었으나 밭을 일구고 무언가를 재배하기에 알맞은 토양은 아니었다. 영지 내에서 자라나는 것들에 영민들의 수요를 빼고 나면 거래가 가능한 양은 소량에 가까웠다. 체스터가 자랑하는 가문의 유구한 역사에 비하면 그들의 재정적 상태는 초라하다 말할 수 있었다. 이를 드러내는 건 가문과 귀족으로서의 자신들에 대한 수치였으므로 그들은 좀 더 비싼 식기와 보석을 비롯한 사치품들을 사들였다. 상류 사회에 있어 그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아직까지는 수준 이상의 소비를 버텨내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무역 쪽으로 시야를 돌려 항구의 소유권을 얻어내는데 열을 내고 있다고 한다.
클로프 레지나 아치볼드 체스터 백작은 체스터가의 장남이다. 미들 네임은 모친의 이름을 따왔다. 가족끼리의 사이는 체스터의 모든 일원이 그렇듯 데면데면한 편이나 두 살 터울의 남동생에겐 기꺼이 살가운 면모를 보이는 듯하다. 이것이 진심 어린 호의인지, 자신의 후계자 승계에 대한 밑작업인지는 본인만이 알 것이다. 체스터의 장남보다는 차남이 더욱 후작위 자리에 어울린다는 평은 공공연히 돌아 이제는 지겨워진 구닥다리 소문이었고, 어느 정도는 객관적인 사실이었다. 유흥의 냄새를 진하게 뿌리고 다니는 장남보다야 신실하고 선한 차남을 위로 보는 시선은 당연한 것이리라. 그러나 차남이 자신은 승계에 관여하지 않고 신께 제 몸을 위탁하겠다 밝히고 체스터 후작이 후계자로서 클로프 아치볼드를 말한 이상, 변수는 없을 터였다.
[술과 담배 그리고…]
럼주와 시가는 클로프라는 사람을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중독성을 띠는 모든 것들을 사랑했고 스스로를 중독 직전까지 내모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것으로 삶의 재미를 느끼는 사람 같았다. 자연히 그에 대한 소문이 떠돌았다. 대게 부정적인 것들이었고 반 이상이 사실이었다. 클로프는 딸을 가진 귀족 부부 누구라도 혼인감으로 고려하고 싶지 않은 남자였다. 적지 않은 나이이나 배우자도 약혼자도 없는 이유에는 위의 사항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 술 냄새도 담배 냄새도 아닌 향이 몸에 배어있을 때가 있었다. 향의 출처를 아는 자는 그리 놀랍지도 않은 일이라며 혀를 찼다.
[행운아]
그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본인의 운에 대한 굳은 믿음이 허투루 생긴 건 아니었다. 이 때문에 호기롭게 시작한 내기에서 큰 돈을 잃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상으로 얻어내는 일이 많았으니 신경 쓸 바는 아니라 생각했다. 클로프는 교회에 많은 헌금을 냈고 주말 예배를 빠지는 일은 드물었다. 이는 체스터의 후계자로서 최소한의 가장에 가까웠지만, 내심 이런 생각을 했다. 신이 정말로 실존한다면 나와 함께한다. 자신이 선한 인간상에서 벗어나있을지라도.
곱슬거리는 결 좋은 흑발은 보기 좋을 정도로 흐트러져 있었고, 자신만만하게 솟구친 아치형 눈썹과 다소 내려간 눈매 안의 눈동자는 새파랬다. 웃으면 도드라지던 입술 밑의 점은 그러나 눈은 웃지 않는 남자의 표정과 합쳐져 꽤나 까다로운 인상을 만들었다. 질 좋은 의복과 구두, 더럽혀지지 않은 장갑 그리고 꼿꼿한 자세는 그의 신분을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게끔 하는 요소들이었다.
웃는 낯으로 주시한다는 건 절대로 호의가 아니었다. 총을 쏠 시기를 재는 것과도 같았다. 가장 예쁘게 포장된 웃음 뒤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남자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