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세
186cm
남성
79kg



중류 계급
법정변호사

“ 그것은 대리인의 소관입니다. ”
윌리엄 메이너드 폭스베리 William Maynard Foxbury



나이에 비해 다소 이른 은여우 털빛의 머리칼. 그보다는 확연히 진한 눈썹. 눈동자가 선명한 밝은 회색 눈. 다소 인상을 쓰고 있는 듯한 표정이 디폴트. 흐트러짐 없이 뒤로 넘긴 머리부터 깨끗하게 닦은 검은 구두코까지 이 남자의 단단한 차림에선 한 치의 빈틈도 찾아볼 수 없다. 깔끔하게 재단되었지만 개성적인 부분이 없는 검은 프록코트 아래엔 역시 주인의 취향이 느껴지지 않는 잿빛의 일상용 정장. 요사이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일까, 프록코트 위에는 때이른 감이 있는 짙은 청색의 오버코트까지 챙겨 입었다. 잔향만이 희미하게 남은 정결한 향수 냄새, 날카로운 인상을 적당히 누그러뜨리는 무테 안경, 약지에 끼워진 특별히 화려하지도 소박하지도 않은 결혼반지 등 윌리엄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그 자신을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고객이 그의 존재를 필요 이상으로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상술한 대로 개성이랄 것이 없는 그의 차림새처럼, 윌리엄은 특별히 모난 구석 없는 잿빛 인간으로 행세한다. 간혹 흥미로운 화제를 들을 때 눈빛이 번쩍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표정 변화도 크지 않다.그런 그의 말투와 태도는 항시 사무적이다. 웃음짓는 것은 적절한 순간에 필요최소한으로. 일터 밖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그는 제 위치를 잘 아는 인간답게 계급제도, 종교적 관행, 그 밖의 모든 질서에 순응한다. 어떨 때는 일부러 제 역할에 맞추어 연기하는 배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귀족이나 부유한 중산층에게는 정중하고 하층계급에게는 적당히 오만하게 군다. 꼭 살갑게 굴면 체면이 깎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와 같이 진중한 신사 윌리엄 메이너드 폭스베리는 결코 남들보다 늦게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는 입을 다문 채 제 위치를 벗어나 가장 먼저 걸어나간다. 그 재빠름이 지금까지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끌었을 것이다.

법정변호사 (barrister)
(1888년 당시 영국의 변호사는 의뢰인의 사무를 대리하여 계약에의 서명, 각종 서면의 작성 등 실질적 소송행위를 수행하는 사무변호사soliciter와 법정에서의 변론만을 담당하는 법정변호사barrister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다. 법정변호사는 사무변호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변론하였으며, 각 분과의 변호사가 다른 직역의 직무를 수행하는 행위는 불법이었다.)
(법정변호사들 중 명망 높고 실력 있는 극히 일부는 왕립자문변호인단Queen's Counsel에 소속되는 칙선변호사QC가 되기도 했다. 칙선변호사는 큰 명예였지만 반드시 다른 법정변호사junior barriter를 대동하고 등원해야 하는 등 각종 제한이 따르는 자리였다.)
[폭스베리 법률사무소] 왕립자문변호인단 소속 칙선변호사인 부친 새뮤얼 메리웨더 폭스베리 시니어(60)가 경영하는 법률사무소chamber이다. 법정변호사인 윌리엄(37)과 윌리엄의 사촌형 존 에버릿 폭스베리 주니어(40), 6촌 동생에 해당하는 데이빗 토마스 폭스베리(28)가 소속되어 있으며, 사무변호사인 형 새뮤얼 메리웨더 폭스베리 주니어(38)와 존 에버릿의 동생인 또다른 사촌형 프레드릭 에버니저 폭스베리(38)가 사무소 내의 한 구역을 차지하고 있다. 영국 법조계는 사무변호사가 법정변호사에게 돈을 주고 일을 맡기는 시스템이기에 부자와 형제가 상부상조하며 일감을 주고받는 폭스베리 법률사무소는 칙선변호사의 명예에 걸맞게 평판도, 수익성도 좋은 건실한 가족기업으로 안정되었다. 아들들 중 뛰어난 쪽이 법정변호사가 되고 나머지가 사무변호사가 되는 이와 같은 방식은 윌리엄의 증조부 대로부터 이어진 것. 5년여 전까지는 사무변호사인 숙부 존 에버릿 폭스베리 시니어가 사무변호 파트를 총괄하고 있었으나 지병으로 타계하면서 새뮤얼 폭스베리 주니어가 그 자리를 이었다. 윌리엄은 네 명의 동세대 변호사들 중 가장 어리지만(데이빗은 다른 넷과 나이차가 많이 나 사무실 내에서 격이 다르게 취급된다) 부친에게 가장 신뢰받는 후계자로, 막 인턴쉽을 끝냈을 무렵부터 새뮤얼 시니어의 보조(junior barrister)로서 업계에 이름과 얼굴을 알려왔다. 지금 그 자리는 6촌 동생 데이빗이 맡고 있다.
[가족관계] 양친과 사용인들과 런던 캄덴 구의 주택에서 함께 살고 있다. 형과 사촌형들은 모두 기혼으로 따로 가정을 이루어 독립했으며, 그들의 집 역시 가까운 곳에 있어 자주 왕래하는 사이이다. 특히 형 가족과 사이가 좋아 수시로 형수 유디스나 조카들을 위한 선물을 보내곤 한다. 아내 메러디스와는 3년 전 사별. 늦은 결혼 후 3년여의 짧은 결혼생활이었다.
[소지품] 금빛으로 잘 닦인 황동 안경줄이 달린 무테 안경은 도수가 꽤나 있는 물건으로 주인의 시력이 썩 좋지 않음을 보여준다. 왼손 약지의 금반지는 중류계급의 분수에 맞는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결혼 반지. 베스트 단추에 매달린 시곗줄 끝의 시계 하나는 제법 호사스런 감이 있는 금으로 된 물건이나 늘 얌전히 주머니에 담겨 있어 그 빛을 드러내는 일이 많지 않다. 검은 넥타이 아랫단, 베스트 안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부분에는 자청색과 백색 용담꽃 문양과 W M F라는 이니셜이 수놓여 있다. 장미향 비슷한 은은한 잔향은 여기에 뿌려진 향수 냄새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