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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185cm

남성

77kg

​노동자 계급

무직

비처 웰치 Beecher Welch
“  나에게 녹색 요정을 줘. ”

  이 사회에서 집시는 자유와 낭만을 대표함과 상반되게도 이방인이며 범죄의 온상으로 배척되는 대상이다. 그 또한 그러한 인식에서 피해 갈 수 없었고 가난했기에 유년 시절부터 도둑질을 일삼는 삶을 택했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왔다. 그로 인해 많은 갈등을 빚어왔고 그중 제일 큰 갈등이 있었으니. 6년 전 집시에게 호의적이었던 보헤미안 화가가 그에게 선처를 베풀어 제 화실의 청소부로 고용했는데, 그 화가의 작품이 자신의 것이라며 동네에 떠들고 그것을 갈취하려 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작품에 화가의 서명이 확인되고 그것을 팔아넘김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당연히 그 화실에서 쫓겨났고 사람들에게 더욱 심한 멸시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화실에서 추방당한 이후로는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 의문이라면 그가 아무 일을 하지 않는데도 여유롭다는 거다. 집시촌의 마차를 떠나 인적 드문 외곽의 낡은 집에서 생활한다거나 술집에 나타나면 돈을 퍼부어댄다거나. 소매치기를 당했을 때는 호탕하게 웃곤 갈 길 가버렸다. 그를 동정하는 이라도 나타났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가난뱅이인데다 출신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다행이라면 화실에서 일하던 당시 동료에게 글을 배워 문맹은 벗어났다는 점이다. 예술과 관련된 것들은 꽤 알고 있지만 더는 써먹을 일은 없다. 가끔 종이에 그림을 그려보는 듯하다가도 몇 분 만에 질린다는 듯 내팽개친다.

 

물 대신 맥주, 홍차 대신 브랜디. 자신을 술애호가라며 그럴싸하게 소개하지만 실상은 알코올중독자다. 조용하게 사는 사이에 주정뱅이가 되어있었다고. 술집에 가면 가격이 비싸든 안 비싸든 돈을 부어대니 주인장은 그를 선뜻 내쫓지 못 한다. 취기 때문에 말을 늘어뜨리거나 근본 없이 주절댄다. 취한 채로 지렁이 같은 낙서를 그려놓고는 자기 작품을 사지 않겠냐며 주접을 떨다가 얻어맞은 적이 있다.

 

"나에게 녹색 요정을 줘."

그가 술집에서 이 한마디를 꺼내면 주인장은 압생트 한 잔을 내밀어 준다. 그는 압생트를 제 연인인양 별명으로 부르며 매일 한 잔씩 마신다. 아니면 다른 '녹색 요정'을 부르짖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그가 뺏으려 했던 작품의 이름이 '녹색 요정(The Green Fairy)'이었다. '녹색 요정'은 녹색 드레스를 입은 집시 여인이 풀밭을 거니는 그림으로, 압생트의 화신을 표현했다고 알려졌다. 그 작품을 본 누구나가 몽환적인 여인의 미와 자유에 매혹되어 잠시 화제에 올랐다. 누군가는 그가 그림 속 여인에게 반해 그 난리를 쳤다고 조롱을 보냈다.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다. 늘 그렇듯 '녹색 요정'을 부르며 '녹색 요정'을 마신다.

 

"높으신 분들은 아주 좋겠습니다. 그 난리를 떨어도 주변에서 오냐오냐해주니까."

 욕지거리와 비꼬는 말을 내뱉는 것에 서슴없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면 입이 근질거린단다. 지체 높은 사람 앞에서는 말을 가리는 듯하다가도 단어 선택이 잘못되어 원래의 입담이 금방 들통난다. 평소 행실을 보아 신경 쓰려는 마음은 처음부터 없어 보인다.

 

"아까 했던 말은 쌩 구라야. ... 아니, 좀 진심이었던 거 같아."

변덕이 심하고 정신이 산만해 종잡기가 힘들다. 방정맞은 입과 어우러져 천박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그가 살던 곳 일대 사람들은 술에 절여져 정신이 성치 않다며 쉬쉬하고 망나니 취급하기 일쑤였었다. 안 그래도 과거 행적 때문에 평판이 바닥을 치고 있어서 쉬이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술까지 들이켰다면 완벽하지 아니한가.

 

"알 바? 땅에 묻히기 전에 다 해봐야지."

염세주의와 허무주의, 그에 기반한 부나비 같은 성정도 갖추었다. 본능에 충실한지 충동 행위를 잘 저지른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람은 언젠가 다 죽을 테니 그 전에 누릴 건 누려봐야 한단다. 그러다가 골로 가기 십상인 짓도 하지만 본인은 개의치 않아 보인다. 그리고 어지간히 사람에게 손을 뻗으려고 하지 않는다. 제 주제를 아주 잘 안다.

그를 본 모두가 꾀죄죄한 와중에도 미모가 출중한 집시였다고 재잘거렸다.

이 시대에서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갈색 피부를 가졌다. 호리호리하면서 단단한 체격. 석탄만큼 검은 머리카락은 곱슬기가 있어 정리를 요하지만 그의 성정상 빗질 두어번에 그친 너저분한 상태, 막말로 개털이 따로 없다. 그와 어울리는 짙은 눈썹도 두드러진다. 희뿌연 녹색 눈동자는 초점이 흐리고, 눈밑으로 기미가 내려앉았다. 참 헤프게 웃어, 보는 이로 하여금 경박하다는 인상을 준다. 덩치에 비해 행동거지가 영 시원찮고 비틀대는 모습을 보자면 아주 꼴사납다. 교양이 없다.

 

그의 옷은 이방인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영국의 노동자 남성들이 흔히 입는 셔츠와 갈색 조끼, 암색 바지와 검은 부츠, 그런 것들이다. 보통 구할 수 있는 옷이 그런 것들이니 선택권이 없었으리라. 그나마 특징이라면 이색적인 파란색 천을 허리에 두르고 있다는 정도겠다. 늘 단추 몇 개는 풀어헤치고 있으며 옷을 입는 품새에서 또 한 번 교양 없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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